“어…? 잠깐만, 이거 수술해야겠는데?” 안 좋은 소식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두개골조기유합증’ ‘희귀질환’ ‘수술’ ‘전신마취’ 의사선생님의 입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웅웅- 거렸다. 이제는 석 달이 지나 비교적 담담하게 할 수 있는 5월의 이야기다. 태어났을 때부터 2호는 머리가 작고 대천문이 빨리 닫힐 수 있어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에 생후 한 달 즈음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 초진을 보았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안면 비대칭이나 두상 모양이 영 신경 쓰였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서울대 어린이 병원에서 ‘두개골조기유합증’ 이라는 병명을 확정 받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확정부터 수술까지 이 모든 상황이 단 2주 사이에 휘몰아친 것이다. (두개골조기유합증: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의 유합하는 과정이 너무 일찍, 불완전하게 일어나서 비정상적인 모양의 머리를 야기하는 희귀질환.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뇌의 압력 증가 및 발달지연 등의 합병증 야기.) 

지방에 사는 우리는 입원을 하러 가는 길도 대장정이었다. 장장 4시간 30분의 장거리 이동. 1호를 맡길 곳이 없어 네 가족 모두 서울로 총출동 했다. 도착을 30분 남겨두고 1호는 차멀미에 분수토를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호는 엉엉 울기까지.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나니 수술 전 검사해야 하는 항목은 또 어찌 그리 많은 지. 그 와중에 삭발까지 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2시간을 금식 하고 모든 검사를 끝낸 밤, 동글동글 까까머리의 아기 동자로 변한 나의 아기는 300ml에 가까운 분유를 마시고 내 품에서 까무룩 잠들었다.

긴긴 밤이 지나 다음 날 아침 7시. 큰 베드에 누운 채 아이는 수술실로 향했다. 내 손가락을 꼬옥 잡고 칭얼거리는 2호의 얼굴을 자꾸만 쓰다듬으며 쪽쪽이를 물려주었다. 그저 “잘하고 와, 엄마가 기다릴게.” 라는 혼잣말과 기도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십 여명의 수술 대기 환아들 중 우리 아이가 제일 어려서 슬펐고, 크나큰 베드에 누운 아이가 너무 작아 보여서 또 슬펐다. 그렇게 아이를 수술실에 두고 혼자 밖으로 나가려니 마음이 참 이상했다.

남편과 1호는 병원 근처 숙소에서 자고 넘어 왔는데, 아직 어린 1호가 동생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어 보여 결국 둘은 먼저 집으로 내려갔다. 병실에서 젖병을 씻고 소독하고, 베드를 정리하고, 이것저것 짐정리를 다 하고도 시간이 너무 안 갔다. 수술실로 내려가 아이를 계속 기다렸다. 같이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하나 둘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다 4시간 40분 만에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 피 범벅이 된 환자복에 머리엔 커다란 반창고와 망을 쓰고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던 지 목소리가 다 쉰 채로, 입이 말라 쪽쪽이가 달라붙은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그랬을 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 혼자라서, 엄마니까, 보호자니까 아이를 달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꽉 깨물고 아이를 달랬다.

회복실에서 나오자마자 CT와 X-ray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 울어서 첫 CT는 실패했고, 이번에도 아이가 달래지지 않으면 또 마취를 해야 한다는 말에 머리가 지끈했다. 전신 마취를 깬 지 얼마나 되었다고···. 병원 복도에서 조급하게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 혼자 찍을 게요. 아기와 엄마 빼고 다 나가주세요” 그리곤 나에게 다가와 “엄마, 아기 계속 달래도 돼요. 괜찮아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덕분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베드에 누워 우는 아기를 보며 반짝 반짝 작은 별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줄 수 있었다. X-ray를 찍을 땐 방금 두개골을 수술하고 나온 아이 머리를 내가 붙잡아야 해서 손이 벌벌 떨렸다. 우여곡절 끝에 CT와 X-ray 촬영을 마친 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이 탁 풀렸다.

안도의 마음도 잠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드레싱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수술 후 심장으로 바로 가는 동맥 혈관을 연결한 곳의 피가 굳어 드레싱을 다시 해야 했다. 한 번만 하면 될 것을 인턴 선생님의 실수로 두 번이나 하게 되었고 아이는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실신할 정도로 울어재꼈다.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실수를 하지 않은 척 넘기려는 태도에 화가 났다. 엄마는 의료진을 선택할 수 없으니 그저 믿고 내 아이를 맡기는 것인데 실수를 인정하는 한 마디만 했더라도 이리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꼭 사과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정중히 사과를 받고 지나갔지만 내 아이와 관련해서는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회복이 빨라서 수혈 부작용도, 전신마취 부작용도 없었고 열도 나지 않았다. 수액을 맞으면서도 분유를 원샷 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이르게 긴급 퇴원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하고 신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2주간의 회복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 아이는 교정모를 쓰고 생활하고 있다. 첫 돌까지 교정모를 쓰고 생활해야 하지만 괜찮다. 끝이 있으니까. 성장하면서 주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봐야 하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다. 

지금 우리는 수술이 잘 된 것에 감사하며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2호의 수술을 겪은 후 육아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마음의 그릇이 넓어졌달까. 아이들이 건강히 내 곁에서 그저 먹고, 자고, 노는 게 참된 행복임을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이 잠든 후 혼자 있는 시간이 좋지만, 두 형제가 잠에서 깨서 나에게 부비대는 순간이 이전보다 더 귀중하게 느껴진다. 병원을 다녀보니 세상에 아픈 아이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엄마, 아빠들이 지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매일을 잘 버텨 내기를 기도한다.

💬 혹시나 이 글을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계신 분이 읽게 된다면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고 지치지 마시라며 응원의 포옹을 보내고 싶어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