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찾아온 후 변하지 않은 건 나의 눈, 코, 입뿐이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몸무게는 20kg가까이 불어났고 손가락도, 발등에도 살이 차올랐다. 한 번 자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던 내가 새벽엔 볼일이 급해 저절로 눈이 떠지기 일쑤였다. 아랫배가 지그시 당기고 꿈틀거리는 느낌이 신비롭고도 이상했다. 

임신초기와는 달리 출산이 임박할수록 혈압은 올라가고 숨 쉬기는 어려워지고 밤마다 두통에 시달리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출산을 하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온 몸은 흐물흐물 늘어진 고무줄처럼 변했고 몸의 탄성력은 일찌감치 그 힘을 잃어버린 채 녹아내리는 양초마냥 볼품없이 무너져갔다. 

아름다운 축복이자 경이로움 그 자체인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아이러니한 변화가 앞으로 나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누군가 한 마디라도 언질을 주었더라면. 선택에 따른 대가와 책임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고 굳게 마음을 먹은 일이었지만 왜 튼살 크림은 전신에 바르는 거라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걸까. 

게다가 가슴 모양의 변화는 더욱 놀라웠다. 유축기는 가슴을 포함하여 울적한 내 마음까지도 불균형인 짝짝이로 만들고야 말았고 늦은 새벽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한 방울, 한 방울 만들려 애쓰던 시간은 온통 눈물로 점철된 시간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한 달도 못 채우고 모유수유는 포기했지만 짝짝이가 된 가슴과 어딘가 모르게 일그러진 마음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존감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선 겨우 힘겹게 기어가고 우울감이 스멀스멀 밑바닥에서 고개를 내밀며 조금씩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엔 기쁨보다는 오롯이 아이와 둘이서만 지내야 한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내가 과연 이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고 잘 돌볼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아이와의 원만한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불신으로 가득했다. 

그 곳에 나 자신은 없었다. 아니,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오직 아이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졌다. 과연 이게 맞나 싶은, 허공에 뜬 것 같은, 어느 구석에 멍이 한참은 든 것 같은 마음을 채 어루만질 새도 없이 아이를 돌봐야만 하는 무미건조하고도 바쁜 일상을 시작했다. 한편으로 불안하긴 했지만 나아지겠지 애써 참으며 웃음기 하나 없이 삭막한 나날들을 꾸역꾸역 소화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와르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언행이 계기였다. 사소하지만 내 기준에선 무심한 발언이었고 그 순간 정신없이 아이를 돌보며 저녁밥을 짓고 있는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일말의 변화도 없이 멀끔한 차림으로 매일 회사에 출퇴근을 하는 남편의 모습이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출산 후 지금까지 쌓여왔던 알 수 없는 먹먹함과 서러움이 거대한 해일처럼 갑작스레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더 있다간 내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겠구나, 나 자신을 절대 찾지 못하겠구나 싶은 극한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래서 아이도, 남편도, 한창 끓어오르던 저녁밥도 내팽개친 채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선택한 결혼과 육아였지만 그로 인해 변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현실 앞에 보기 좋게 무너지는 내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나서야 했다. 걷고 또 걸으며 무엇이든 찾아보려 애썼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걷고 걸어야 나를 찾을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했다. 

하, 호기롭게 집을 나서긴 했지만 마땅히 갈 데도 없고 동네 어귀만 하염없이 맴돌다 보니 더욱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몸과 마음을 타달타달 이끌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진즉부터 목을 쭉 빼고 기다린 복숭앗빛의 하늘이 발간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하늘색이었다.

너로구나. 그래, 난 너를 참 많이 좋아했어. 딱 지금 이맘 때 발갛게 빛나던 하늘. 하얀 뭉게구름들도, 책 페이지들을 펄럭일 때마다 풍겨오는 오래된 향기도, 노랫말과 멜로디에 흠뻑 빠져 하염없이 걷는 것도. 결국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은 것들은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내가 나고서 지금까지 사랑해 온 수많은 것들이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당연하지만 당연히 여겨지지 않았던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나를 찾는 일. 이렇게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쉬어진다는 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위로가 된다는 걸 난 왜 그 동안 알아차리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이와 시간에 쫓기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꼭 해야만 하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임을, 그것이 곧 아이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고 아이가 행복해지는 일임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젠 나와 모두를 위해 억지로라도 나를 먼저 찾아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훌쩍 커버린 아이와 함께 매일 창문을 열고 해가 지는 발간 하늘을 바라보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질 때까지 나를 향한 힘찬 응원과 애정을 건넨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할게.

나를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

💬 올맘님들, 오늘도 여전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계시죠? 차마 내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말이죠. 우리 단 10분만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숨 쉴 틈을 주고 토닥여주는 시간도 가져보기로 해요.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보며 나를 찾는 시간.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