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취침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 시간까지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재우다 보면, 나까지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다 갑자기 잠에서 깬 날은 시계를 보고 흠칫 놀라며 거실로 나간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 하기 아쉬워 혼자 티비를 보기도 하고, 강아지 호두를 꼭 끌어안고 책을 읽으며 고요한 밤의 시간을 홀로 누리곤 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 갑자기 엄마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잠이 영영 깨어버렸을새라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우리집 둘째는 잠결에도 엄마의 부재를 알아채는 건지 곁에 엄마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귀신 같이 벌떡 일어나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문을 철컥 연다. 얼른 둘째의 손을 잡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둘째를 눕히고 토닥토닥 재우려던 그때, 둘째가 가만히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헤어지는 연인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애틋한 손길처럼. 조그맣고 뭉뚝한 손으로 눈, 코, 입을 천천히 쓸어주는데, 그 느낌이 너무 행복해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이 행복한 순간에 딱 하나 아쉬웠던 건, 시력이 나빠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안경을 끼지 않으면 코 앞에 있는 사람 표정도 보이지 않는 시력이 이토록 야속할 수가 없었다. 시력 교정술을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 얼굴이었을까.

아이가 둘인 집은 첫째가 엄마 껌딱지인 경우가 많다던데, 우리 집은 정 반대다. 느낌 상으론 둘째보다 첫째와 더 많이 붙어있는 것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첫째의 짝꿍은 아빠, 둘째의 짝꿍은 엄마가 되었다. 신생아 시절 둘째의 밤잠 메이트는 아빠였다. 그러다 엄마가 아니면 절대 옆자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둘째의 확고한 고집이 생기고부터 자연스레 밤잠 파트너가 바뀌게 되었다. 둘째가 귀여워 간혹 아빠가 첫째 자는 틈에 살짝 내려와 둘째를 쓰다듬기라도 할라 치면 시러!!! 를 외치며 고개는 물론 몸통까지 홱 돌려 엄마 품을 파고들 정도다. 간혹 둘째가 엄마 껌딱지인 게 잘못된 육아의 결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사실을 꽤나 즐기고 있다.

첫째는 비교적 독립적인 성향이라 엄마, 아빠에게 안기거나 뽀뽀를 많이 해주는 타입은 아니다. 한 번씩 스윗한 면모를 보여주긴 해도 전반적으로 살짝 무뚝뚝한 친구라 할 수 있다. 마치 도도한 매력을 가진 고양이 같달까. 정반대로 둘째는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드는 강아지 마냥 애교가 철철 넘친다. 그것도 나에게만 한정해서. 이게 얼마나 큰 메리트이고 자부심인지 아빠는 모를 게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첫째는 워낙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라 자부타임을 가질 때도 걱정이 없다. 엄마가 있든 없든 아빠만 있다면 잘 놀고 잘 자는 친구라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가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그런데 둘째가 엄마 껌딱지가 된 이후로 자부타임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잘 때 꼭 필요한 애착엄마가 없으니 오랜 시간 대성 통곡을 하다 지쳐 잠드는 것이다. 이때 아빠의 달램은 전혀 소용이 없다.

다음날 아침, 둘째가 내 얼굴을 찬찬히 쓰다듬어주던 전날 밤의 일을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어? 선준이랑 똑같네. 선준이도 그랬잖아.”

선뜻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왜 기억이 안 나지.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가다 비로소 그 날의 장면을 만났다. 둘째를 낳고 조리원을 다녀왔던 때, 첫째도 꼭 간밤의 둘째처럼 내 얼굴을 찬찬히 만졌더랬다. 자다 가도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엄마의 존재를 손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안심하고 잠들었었는데(···). 그때 그 장면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울컥하는데, 그걸 잊고 지냈다.

이쯤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둘째가 너무 엄마만 찾으니 첫째가 엄마를 동생에게 양보한 건 아닐까. 첫째도 종종 “나도 엄마랑 자고 싶어.”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둘째의 “아니야!!!! 싫어!!! 엄마랑 자꺼야!!” 하는 외침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첫째를 아빠의 옆자리로 보내곤 했었다.

오늘은 동생에게 엄마를 양보해줄 만큼 훌쩍 자란 첫째를 꼭 껴안고 자야지. 머지않아 두 아이들이 엄마, 아빠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되고, 자기만의 세상으로 나아갈 미래를 떠올리면 품 안의 자식일 때 최선을 다해 안아줘야지 싶다. 부족하고 부족한 우리 부부에게 부모라는 자리의 무게를 알게 해주고, 내리사랑보다 큰 치사랑을 알게 해 준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엄마 사랑해줘서 고마워 얘들아!

💬 아무리 애교많은 아이라지만, 엄마를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봐줄 시기는 생각보다 짧을 것 같아 엄마 껌딱지 시기를 기쁜 마음으로 만끽하고 있답니다💙 아빠한테는 안 해주는 뽀뽀 엄마한테만 해줄 때의 은근한 쾌감이란...(!)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45개월 1호와 25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