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 눈 깜짝할 새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주말은 온종일 아이와 둘이서만 보내야하기에 평일에 모든 일들을 웬만히 다 끝내 놓지 않으면 안됐다. 이번 주는 잠시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주말이 찾아온 것만 같아 벌써부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아, 이번 주말엔 또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까. ‘오늘은 뭘 먹나’ 다음으로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이다. 남편의 일은 주말과 평일 구분이 따로 없어 주말엔 아이와 꼼짝없이 둘일 때가 많다. 그럴 땐 금요일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집에만 있으려니 아이도 나도 답답할 것 같고 나가자니 차를 끌 수도 없는 뚜벅이라 이동이 힘들다. 진즉에 운전연습을 톡톡히 해놓을걸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뭔가 특별한 활동을 할까 싶다가도 엉망이 될 집안 꼴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방구석을 닦으며 뒷수습을 할지언정 어떻게든 알차고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아이도, 나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거실에 모래놀이용 매트를 펼치고 물감놀이라도 하자 큰맘을 먹었다. 후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용도실에서 힘겹게 매트를 꺼내며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은 거실에서 물감놀이 어때?”

말은 이미 꺼냈고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뒷수습이 아무래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물감놀이 생각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래도 이 시간만 잘 보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있겠지.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하는 활동이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엄마, 물감놀이 말고 앵무새 보러 가고 싶어요.”

앵무새라니. 그나마 동물원을 가자고 한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작년 겨울에 다녀왔던 버드파크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새들에게 직접 먹이도 주고 가까이서 새를 관찰할 수 있어서 아이가 무척 좋아했었다. 다행히 둘이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앵무새카페가 있는 걸 알아냈다. 아이는 정말 날아갈듯 좋아했다. 종알종알 앵무새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어떤 앵무새를 만날까 기대에 잔뜩 부푼 채 앵무새카페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 위에 앉아 큰 소리로 울어대는 청금강앵무, 빨간 연지가 매력적인 노란색 왕관앵무와 다정한 잉꼬 사랑앵무, 어깨에 앉아있기를 좋아하던 모란앵무도 만났다. 아이는 앵무새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작디작은 손 위에 앵무새를 올려놓은 채 먹이도 주며 조잘조잘 거리는 순진무구함에 나 또한 아이에게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을 즈음 겨우 앵무새카페를 나설 수 있었다.

“엄마, 우리 이번엔 새로운 길로 가 봐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자고 할 참이었는데 이번엔 동네 탐험을 나서잔다. 그래도 아이의 손에 이끌려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향하는 길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두 명의 탐험원정대는 해가 어스름히 내려앉을 때까지 동네 곳곳을 표표히 떠다녔다.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었고, 촉박한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으며 꽤 오랜 시간을 걸었음에도 웬일인지 아이는 평소처럼 힘들다, 업어 달라 떼를 쓰지도 않았다.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한, 황홀하고 낭만적인 둘만의 멋진 주말이었다.

“엄마, 오늘 정말 즐거웠죠? 다음에도 또 와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길, 아이는 정말 알차게도 모래 놀이터에도 들렀다가 이어서 마트까지 들러선 좋아하는 캐릭터 음료수 한 병을 골라 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한적한 벤치에 앉아 분수를 바라보며 유유자적을 한껏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아이의 취향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 완벽한 하루, 그 자체였다.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종일을 보내고서 잠이 들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정말 완벽한 하루. 이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몇 안 되는 날이 되겠지만 항상 이런 기분과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주말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그런 하루였다.

언제나 주말을 앞두고서는 거창하고 휘황찬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비록 몸이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뭔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하고 알찬 경험으로 주말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던데 그 소중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항상 좋은 것, 특별하고 즐거운 것들로만 채워주고 싶은 아이와의 주말. 

하지만 때론 집에서 뒹굴 거리며 심심함을 느껴보는 것도, 집 앞 문방구에 있는 뽑기 기계에서 뜻밖의 장난감을 손에 쥐어보는 것도, 평소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을 함께 만들어 보거나 손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지고 나르는 걸 발견하는 소소한 주말이어도 아이의 입장에선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라면,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고 행복한 주말이 아닐까. 

난 오늘 아이의 환한 미소가 가득한 두 눈동자 속에서 아이와 같이 해맑게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을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주말에 무얼 하든, 안하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바로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일이라는 걸. 서로가 즐겁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웃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완벽한 주말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언제나 다가오는 주말엔 뭘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좀 편안하게 마음을 먹어보려고요. 아이는 분명 온종일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주말일 테니까요. 올맘님들은 이번 주말, 아이와 무엇을 하며 보내실 예정이신가요?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