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육아 동반자가 있다. 집에선 ‘오빠’ 라고도 불리고 일각에선 ‘남의 편’ 이라고도 불리는 이 육아 동반자는 나의 출산과 동시에 본인도 크기만 커져버린 신생아가 돼 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와 나란히 눈만 뻐끔뻐끔 뜨고 다녔다. 조리원에 잠시 들렀다 친정에 한 달을 있다가 돌아왔을 때에도, 저녁밥을 지음과 동시에 아이를 안고 젖병을 물릴 때에도, 잠 한 숨 못자고 몰래 하염없이 눈물을 훔칠 때에도, 아이가 울며불며 나에게 매달려 안아 달라 떼를 쓸 때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다정한 위로 하나 없이 그저 우두망찰하게 서 있기만 하던 육아 동반자는 자그마치 5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에도 한 번씩 아이와 내 앞에서 한없이 멍해 있을 때가 많다.

처음엔 공감능력이 다소 결여된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가 하루아침에 다정다감한 형으로 바뀌진 않을 테니 이해해보자 했던 마음도 시간이 점점 지나고 서러움과 힘듦이 거대한 산처럼 쌓여 갈 때도 요지부동이니 이 사람은 대체 나와 아이에게 손톱만한 관심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편이란 사람이 평생을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게 될까 싶어 육아의 고충을 나누고 공동육아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토로하며 하나씩 하나씩 아이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분유를 타는 일부터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재우기,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 등등을 세세히 가르치다 보니 남편은 제법 그럴싸한 육아 동반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허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했던가. 남편은 말 그대로 내가 가르쳐 준 일들만을 끝내고 금세 뒤돌아서기 일쑤였다.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의 태도와 행동은 꼭 육아란 엄마인 내가 주로 하는 업무이고, 자신은 그걸 도와주는 일 정도로만 치부해버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남편은 우리 집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아주 큰 업무를 지고 있지만 내 기준에서 육아는 함께 하는 공동의 업무이자 책임이었다. 그걸 단순한 일로만 생각하고 재고 따지면 안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와 놀아주는 일에 매우 서툴렀다. 다정한 남편까진 아니어도 다정한 아빠는 돼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심장을 잃은 양철나무꾼 같았다. 아이와 놀 땐 삐걱삐걱 소리를 내기 일쑤였고 금방 고장이 나 버렸다. 기름칠을 양껏 해주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삐걱 거리는 사람이 돼 버렸다. 원래도 이렇게 무심한 사람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아이가 조금씩 남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나와는 대조적으로 적은 편이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지만 나로선 그마저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따끔히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일이 힘들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다 알겠는데 그래도 잠깐이라도 아이랑 시간을 좀 보내는 건 어때?”

“......미안하다.”

뭐가 미안할까. 뭐가 그리도 어려울까. 마음 쓰는 일이, 관심을 두는 일이 그리도 힘들까. 미안하다는 말은 모든 걸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만드는 무책임한 말 같았다. 이제부터 육아라는 거대하고 중요한 책임을 오로지 나 혼자서만 끙끙거리며 짊어지고 갈 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 건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가르치지 못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한 번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라 기본 바탕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일일이 가르쳐야만 했던 거라니. 양철나무꾼에게 기름칠만 할 게 아니라 시뻘겋게 살아 숨 쉬는 심장을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조용한 사람이지만 대화할 때만큼은 잘 통한다고 여겼던, 그래도 할 말은 곧잘 하고 어느 정도 다정한 표현쯤은 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오빠에서 아빠로 변한 것이 그에게도 퍽 힘든 일이 됐던 모양이다.

다른 건 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모든 걸 제쳐두고서라도 아이와 단 10분만이라도 눈을 맞춰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말로 하면 격한 감정이 먼저 나갈까 싶어 조용히 글로 남겨두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남편은 나의 글에 노력해 보겠다는 나름의 성실한 답변을 남겼고 퇴근 후 아이와 잠시라도 놀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서툴지만 천천히, 나와는 다르지만 본인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론 내 맘에 완벽히 다 차지 않을 때도 많지만, 한 번씩 삐걱삐걱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양철나무꾼의 마음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부모가 된다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우리는 어쩌면 육아라는 거대하고 막중한 책임 앞에 서로 다른 가치관과 언어로 표현하고 정의하는 이방인일 수 있기에. 그 해석과 표현방식에 있어서 조금은 어색하고 비록 서로의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이를 그 어떤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껴주는 육아 동반자라는 든든한 울타리에 함께 묶여 있기에. 양철나무꾼은 원래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한 발, 한 발 느린 걸음일지라도 끝끝내 육아에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도 때론 티격태격하며, 또 때론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며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고 있다.

💬 올맘님들의 나무꾼은 다들 ‘육아’에 다정다감한 편이신가요? 내 맘처럼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까지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서로 이해하며 응원해주며 평생토록 의지할 수 있는 동지가 있어 그래도 든든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시겠지요?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