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서너 살쯤 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들 중 하나는 ‘둘째’ 에 관한 것이었다. 둘째는 안 가지냐,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둘은 있어야 덜 외롭다, 첫 아이가 아들이라 하니 형제가 낫겠다, 혹은 딸 하나는 키워봐야지, 어쩌고저쩌고… 자식계획에 이리도 관심이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조언을 건네는 당사자들은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뜻에서 혹은 그저 순수하게 둘째 계획이 정말 궁금해서 한 마디씩 건넨 말씀들일 테지만 듣는 나로서는 한편 의아하고 벙벙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육아를 하며 힘든 부분에 대한 조언을 구해도 결국엔 둘째를 낳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유난히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는 것도, 아이가 엄마한테만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도, 혼자서는 절대 놀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이 모든 일이 신통방통하게도 둘째만 낳으면 뿅 하고 다 해결되는 것일까? 

아이를 낳기 전, 나의 자식 계획은 무려 셋이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에는 그냥 왠지 모르게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형제자매들이 셋이 있는 집을 보면 그네 집 속사정도 모르고 그저 알콩달콩, 복작복작 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자식 계획엔 변함이 없었다. 임신이 체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덧 한 번이 없었고 힘든 줄도 몰라서 배가 한참 불러올 때까지도 일을 쉬지 않았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넘나들며 동에 버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임산부로 지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둘이나 셋까지는 거뜬할 줄 알았다.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출산이 이루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셋 그까짓 것 별거 아니지.’ 이는 참으로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이었으며 말 그대로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걸 그 땐 미처 알지 못했다.

이팝나무 꽃이 낮에는 눈꽃처럼 흩날리고, 밤에는 별꽃처럼 향기로이 반짝이던 오월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던 어느 날, 새벽에 양수가 터졌다. 그런데 혈압을 재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눈빛과 분주한 발걸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심상치 않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뒤이어 오신 담당 선생님의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임신중독. 막달에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임신중독이라니.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곧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가고 아이의 얼굴을 한 3분 남짓 본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이어서 터진 자궁출혈. 자궁수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출혈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이 불가피했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내내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에 짓눌려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른 채 자궁색전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뜬금없이 자식 계획을 물어보셨다. 

“혹시 둘째 계획 있으세요?” 어제 아침에 갓 출산을 하고 과다출혈로 기진해 누워 있는 사람에게 갑자기 웬 자식계획 타령인가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니 물어보신 이유가 다음과 같았다. “이번 시술로도 출혈이 안 잡히면 자궁을 적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부의 말씀. “너무 겁먹지는 마시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지금부터 시술이 끝날 때까지 절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세요.”

오던 잠도 달아날 만큼 무시무시한 당부였지만 내가 여기서 유일하게 살아 나갈 동아줄이었다. 절대 잠들지 않으리라 두 눈을 부릅뜨며 안간힘을 쓴 결과였을까. 다행히 출혈은 멈췄고 총 7팩의 수혈을 받고 나서 자궁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지만 다음 둘째 출산 때도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임신중독이 올 확률은 처음보다 8배나 높은 고위험 산모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둘째를 아예 못가지는 건 아니었지만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자식계획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면서 둘 이상의 다자녀를 가진 엄마들을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게 되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기쁨도 잠시, 수술동의서를 두 번 이나 적었었던 그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리는 것 같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과 아이가 있던 산부인과를 오가며 고군분투했던 남편에게도 둘째는 어려운 일일 테다.

그래서 외동이 되었다. 이러한 속사정을 만나는 사람마다 알려줄 수는 없으니 그냥 생각이 없다고 얼버무린다. 외동이라고 다자녀라고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듯하다. 그저 각자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지금보다 더 좋고자 혹은 더 행복하고자 하는 이유로 자식 계획은 만들어진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어느 날엔가 불쑥 둘이나 셋이 되는 경우는 더욱 복된 일이겠다. 나에게도 그런 복덩이가 찾아오면 너무나 축복이겠지만 현재 외동이라고 해서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중하고 애틋한 하나이기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있다. 하나라서 해줄 수 있는 것, 함께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는 걸, 하나로도 나에겐 충분히 감사하고 벅차다는 걸 온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요즘이다. 

어느 날 남편의 SNS에서 1+1=3 이라는 상태 메시지를 보았다. 처음엔 갸우뚱했다가 이내 고개가 끄덕여지며 피식 웃음이 번졌다. 놀랍게도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 외동을 키우시는 올맘님들 많으신가요? 전 5년째 외동으로 키우면서 둘째에 대한 여러 이야길 참 많이 들었어요.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결론은 아직도 외동입니다. 모든 일에 정답은 없는 것이고 바란다고 해서 계획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기에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지금 현재 행복하자는 마인드로 우리 세 가족, 비록 우당탕탕 할 때도 많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외동 그리고 다자녀를 가진 올맘님들 모두, 우리 지금 그냥 행복하자고요.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