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해요🌞 덥거나 춥거나를 떠나서, 그냥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가 너무 좋더라구요. 그런데 올여름은 6월 중순부터 폭염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역대급 무더위가 예상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아직도 여름이 제일 좋아?', '너도 올여름만큼은 못 버틸걸?'라는 식으로 저를 도발하지 뭐예요?😤 그래서 추억의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지오만의 여름 시시콜콜을 준비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다 보면 올맘님의 기억 속에 있던 찬란한 여름 햇살도 생각날 거예요🧚‍♀️

1987

'GOLD STAR'라고 써 있는 낡은 선풍기. 내가 태어나고 100일 즈음 되었을 때 맞이한 첫 여름, 부모님께서 큰맘먹고 구매했다는 '인공지능' 선풍기. 도대체 뭐가 인공지능이라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땐 인공지능이 유행이었고 인공지능이라고 써있으면 그렇게 비쌌단다. 30년 넘는 세월 우리 가족과 함께 무더위를 버텨온 선풍기는 낡았지만 여전히 잘 작동한다. 늙었지만 정정한 할아버지 느낌. 갓난아이였던 나를 위해 구매한 선풍기이기 때문에 이 선풍기는 매년 여름 내 전용이다.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내 먼지를 닦는 아빠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다.

1992

아주 어릴 때, 여름이면 온가족이 거실에서 같이 잤다. 커-다란 모기장을 거실 가득 둘러치고서. 겨우 우리 집 거실인데도 엄마아빠랑 여행 온 기분이라 그게 무척이나 좋았다. 하늘하늘한 모기장 안은 나만의 디즈니 왕국이었다. 이불 동굴을 탐험하기도 하고, 멋진 이불 망토를 어깨에 걸친 공주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까르르 놀다 잠이 들면 엄마가 부쳐부는 부챗 바람이 솔솔. 감기에 잘 걸리던 어린 나를 위해 엄마는 손수 부챗 바람을 부쳐주셨다. 땀이 나서 설핏 깨어 잠깐 뒤척이면 엄마도 잠이 깨어 반사적으로 부채를 부쳐주던 바람,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우리 엄마 팔뚝 조물조물, 엄마 냄새 킁킁.

1995

워터파크가 없던 시절에는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다녔었다. 우리 가족은 바다보다 산 속 계곡을 좋아했는데, 일 때문에 이곳저곳 많이 다니셨던 아빠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계곡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돗자리를 펴 자리를 잡고, 참외랑 수박을 계곡물에 담가놓으면 물놀이 준비 완료. 물놀이라고 해봤자 끈 묶은 튜브를 타고 제자리에 동동 떠있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첨벙첨벙 물싸움! 서로에게 물을 끼얹으며 신나게 놀다가 지치면 도시락 까먹을 타이밍. 새벽부터 엄마가 만든 도시락과 수박을 먹고, 돗자리에 누워 낮잠 한숨 자면 피서 끝.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음 주에도 놀러오자고 벌써부터 아빠를 조른다. 주6일 일했던 아빠가 매 주말마다 우리 남매를 데리고 전국을 누비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큰 사랑이었을지, 지금에야 절절히 느낀다.

2002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놔도 바람 한 점 안 들어오지만 내 골드스타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계속 쥐고 있어서 손이 끈적끈적해졌다. 목덜미의 땀방울을 옷자락으로 대충 닦으며 일어난다. 새빨간 색깔에 흰 색으로 Be the Reds!가 써있는 티셔츠. 월드컵이 끝나고도 그 여운이 한참 갔었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집 밖에서는 입기 조금 부끄러운 티셔츠가 되어버렸다. 뭐 어쨌든 잠옷으로 한 10년은 입겠지? 거리응원할 때 실컷 기분냈으니 돈은 안 아깝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버리고, 차가운 물로 손을 씻고, 왠지 아쉬우니까 냉동실에서 얼음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다시 대자로 눕는다. 그러다 또 배탈난다는 엄마의 잔소리 너머로 창 밖에서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꺄악꺄악 들려온다.

2011

첫 직장은 서울, 자취방에서 지하철로 왕복 3시간거리. 내 한 몸 뉘이면 가득 차는 작은 방에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는 자취방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곳이었다. 주말에도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니까 무조건 나가야 했는데, 토요일 일요일 둘 다 먼 곳까지 돌아다니기엔 서울 도심은 사람이 너무 많고  내 체력은 너무 적었다. 다행히 내 자취방 근처에는 공원이 있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여도 공원 숲 길은 여전히 시원하다. 벤치에 기대 앉아 테이크아웃해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한다. 성큼성큼 주인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다리가 너무 귀여워.

2022

코로나가 슬슬 잡혀가고 정말 오랜만에 계획한 여행. 어디로 갈까? 여행을 가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무섭다. 바닷가였으면 좋겠고, 이동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고...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강원도 해변 사진을 보고 즉흥적으로 정해버린 여행지, 강원도 양양. 서울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자고, 다음날 새벽에 프리미엄 버스를 타고 출발. 사람없는 강변과 해변에서 오랜만에 마스크 벗고 돌아다니니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하루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친구랑 수다떨었던 1박 2일, 17년이나 알고 지냈는데 아직도 이렇게 할 말이 많네.

계곡 물에 풍덩 뛰어들거나, 신나는 여름 음악을 틀어놓고 바다를 향해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가거나, 거실에 대자로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거나... 올맘님의 여름 추억 이야기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