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7개월 무렵이었다.

“어머니, 규현이가 말이 좀 늦게 트이려나 봐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아이가 또래들보다 말이 조금 느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마스크를 쓰며 생활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연일 접하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왜 유독 내 아이만 그럴까. 이상하게도 내 아이 일에는 ‘그러려니’ 가 잘 안됐다. ‘아들은 원래 말이 느리다.’ ‘36개월만 지나면 괜찮다.’ 와 같은 말은 내 귀에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언어치료는 한 살이라도 더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넋 놓고 있다가 치료시기를 놓친다.’ 와 같은 말만 어지럽게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36개월까지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느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겠다 싶어 대학병원에서 언어검사를 받았다. 설마 정말 별일이야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5개월 이상 언어지연’ 언어치료를 주 2회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아이의 한 달은 매우 큽니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어요. 절대 미루지 마시고 지금에라도 당장 언어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때부터였다. 나의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건. 그렇게 느닷없이 기저귀를 떼려는 마음을 먹게 됐다. 30개월 전에 배변훈련을 끝내리라 굳은 결심을 했다. 가뜩이나 말도 느린데 기저귀까지 늦게 뗀다면 감히 엄마가 된 자로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이에게 소홀했다는 죄책감이 야금야금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 싶어 당장 다가오는 주말부터 팬티를 입자고 선언했다. 사전에 아이에게는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제부터 기저귀는 벗고 팬티를 입을 거야. 이제 오줌은 변기에서 눠야 해. 절대 팬티에 싸면 안 돼.” 엄마의 결연한 의지를 아이도 오롯이 느꼈던 걸까. 아이는 팬티에 대한 큰 거부감 없이 기저귀를 벗었다. 그렇게 아이의 엉덩이만을 바라보는 날들을 이어갔다. 처음엔 그냥 편안하게 팬티에 소변을 봤다.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러다 뜨끈히 흘러내리는 소변의 찝찝함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다리를 엉거주춤 벌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시간 맞춰 변기 앞에 데려가 오줌을 누는 연습을 수차례. 어느 날엔가 갑자기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는 표현을 하며 화장실로 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머니 규현이가 기저귀를 뗀 것 같아요. 반에선 처음이에요. 너무 기특하고 멋져요.”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도 기저귀는 여전히 보송보송하게 메말라 있었다. 그렇게 나의 배변훈련은 완벽하게 성공하는 듯 보였다. 말은 느려도 배변훈련 만큼은 성공했다는 뿌듯함에 어깨가 절로 올라갔다. 그러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대변 가리기였다. 대변이 마려울 땐 아이는 정말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왔다갔다 어쩔 줄 모른 채 한참을 배회하더니 결국은 대변을 참기까지에 이르렀다. 변을 보지 못하는 날이 하루 이틀 쌓여가고 마침내 변비가 찾아왔다. 조급함의 시작이 이런 사태를 만들고야 만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배가 아프다고 힘겹게 신음하는 아이의 배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가 큰 거부감 없이 팬티를 입어주었던 건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하였던 아이의 작은 배려가 아니었을까. 언어치료 결과를 듣고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한숨소리와 걱정 가득한 안색을 아이가 진즉에 알아챘던 건 아니었을까. 말은 느려도 눈치는 빨랐던 아이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었단 걸 알고 이만큼이나 노력해준 게 아니었을까.

안되겠다 싶어 다시 기저귀를 채웠다. “미안해. 그동안 참느라 많이 힘들었지? 이제 똥은 기저귀에 하자. 똥 마려우면 기저귀 하고 앉아서 눠도 돼.” 그렇게 기저귀를 찬 채 아이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함께 쭈그리고 앉아 끙끙 힘을 주며 변비를 탈출했다. 폭풍처럼 시작된 배변훈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나는 여전히 아이랑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조급함과 기다림의 한복판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일이 많다. 그러나 아이의 시간은 각자 다르게 흘러감을 알기에 적절한 조급함과 적절한 기다림 사이에서 완급조절을 하려 노력한다. 참고로 우리 아이의 경우 언어에서만큼의 기다림의 선택이 옳았다. 다섯 살이 된 지금은 언어로 인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변기는 조금 무서워할 뿐이다. 그러다 얼마 전 나의 기다림이 반짝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만났다.

“엄마, 나 변기에 한 번 앉아볼까? 혹시 파라사우롤로푸스처럼 뿌뿌 소리를 내면 똥이 퐁 하고 나올 것 같아서.”

“변기에 앉는다고? 대단한데? 한번 앉아봐, 그럼.”

“뿌우뿌우-. 엄마, 그런데 파라사우롤로푸스처럼 했는데도 똥이 안 나와. 어떡하지?”

“괜찮아. 다음에 또 해보면 되지. 해 보는 게 중요한 거야.”

“다음엔 진짜 큰 똥이 나올 거야, 그치?”

“그럼, 어마어마하게 큰 티라노사우루스 똥이 나올걸?”

“응 엄마. 다음엔 내가 꼭 변기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똥을 눌거야!”

💬 육아전문가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육아에 있어서 어떤 일엔 빠른 개입을, 또 어떤 일엔 차분한 기다림을 적절히 제공하는 밸런스가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전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엔 ‘조급함’을 선택하게 될 때가 많았어요. 제 성질이 많이 급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떤 땐 아이를 좀 더 믿어주며 진득하게 기다리고 지지해주려 노력하는데 너무 답답해서 바라만 보는 일이 정말 쉽지는 않네요. 올맘님들의 선택은 어느 쪽이신가요?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