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마테라피 

나혼자산다 프로그램에서 박세리가 반려견의 발냄새를 맡는 짤을 본 적이 있는가. 이름하야 개로마테라피. 나도 개어르신 호두를 9년 가까이 키우며 그 꼬순내에 중독되었다. 수년간 개로마테라피를 일삼던 내가 출산 후 애로마테라피(?)에 빠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기 특유의 냄새에 중독된 것이다. 시시때때로 아기 냄새를 맡으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곤 했다.

여러가지 애로마테라피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건 바로 발냄새다. 신생아 때부터 2개월까지는 매일 양말을 신겼는데 아이가 용쓰면서 양말 속 발에서 땀이 촉촉하게 난다. 촉촉하게 난 땀 때문에 발을 만지면 촉감이 쫀득하다. 그리고 발가락 뒤쪽을 쫙 벌려 코에다 밀착 시켰을 때 나는 발가락 사이사이 꼬숩한 냄새! 비슷한 냄새로는 손싸개에 밴 손냄새가 있다. 소위 식초냄새라고 말하는데 식초와는 조금 다르게 꼬수운 냄새가 더해져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귀여운 냄새라고 하고 싶다. 체급이 남다른 우리집 2호는 땀이 많은 편이라 발냄새가 더 향긋(?)하다. 뒤집기를 시작하며 발가락을 쫙 벌리는 버릇이 생겨 전보다 냄새가 덜 나는데, 그게 그렇게나 서운할 수가 없다. 걷기 시작한 1호는 발이 건조해지며 아예 냄새가 안 나기도 하는데 이따끔 외출 후 운동화에 발냄새가 날 때도 있다. 애로마테라피라기엔 그 냄새는 너무 묵직해서 감히 중독되지 못하고 있다.

발냄새, 손냄새 외에는 분유를 먹고 난 후에 나는 입 냄새, 침냄새가 있다. 잠에서 깨어난 남편의 입냄새는 그리 싫더니 아기 입냄새는 일부러 코를 대고 찾아서 맡는 내 모습을 볼 때면 피식 웃음이 난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점점 더 어른의 입냄새와 가까워지고 일반식을 먹으면 그냥 어른 입냄새가 난다. 그래도 내 아이한테서 나는 입냄새, 침냄새는 너무 귀엽다!

그리고 로션이 낀 목냄새! 우리 아이들은 특히 목이 짧은 편이기도 하고 듬뿍듬뿍 발라줘서 그런지 로션이 자주 목에 끼였다. 로션이 낀 목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꼬릿한 냄새로 변한다. 1호를 키우던 시절에는 이 냄새의 정체를 몰라서 병원에 가봐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헌데 2호를 키우면서 이 냄새의 정체가 로션이 몸에 흡수되지 않고 몸에 끼였을 때 나는 냄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냄새는 역대급으로 꼬릿해서 중독이 안 될 줄 알았는데 2호를 키우며 다시 맡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왜 인지 모르게 코를 대고 킁킁 거리게 된다. 이제 2호가 목을 치켜 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목에 낀 로션 냄새도 사라져가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 2호를 키우며 새롭게 알게 된 정수리 냄새도 있다. 1호는 정수리 냄새가 크게 없었던 것 같은데 희한하게 2호는 아무리 씻겨도 남자 호르몬 냄새가 심하게 난다. 남편 베개에서나 맡던 냄새가 우리 귀여운 2호의 정수리에서 나다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샴푸를 두 번씩이나 해도 여전히 그 냄새는 사그라들지 않고 기세가 등등하다. 아들 맘들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해주곤 했지만 직접 겪으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 외에도 귀 뒤에서 나는 냄새, 귀 속에서 나는 냄새, 뒤통수 냄새, 딸기를 맛있게 먹고 난 다음 씻어도 남아있는 달콤한 잔향, 꽉 안았을 때 나는 향기, 갓 빨래한 옷을 입었을 때 나는 냄새 등 수도 없이 많은 애로마테라피의 순간들이 있다. 그저 아이 냄새만 맡아도 힐링이 되고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들.

바디로션으로 향수로 샤워를 하던 과거의 나는 지금 이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 율리아한테 첫째 냄새 난다. 둘째 냄새 나네.’ 하는 말이 아이가 없던 시절 ’너한테서 좋은 냄새난다.’ 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좋다. 이렇게 진정한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아이를 낳아도 절대 나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뭐 애 엄마도 결국 나의 자아 중 하나니까! 이따금씩 혼자일 때가 그립긴 하지만 두 아들내미와 커다란 아들 같아진 남편과 함께 하는 지금의 우당탕탕 일상도 충분히 좋다.

💬 여러분의 애로마테라피 모먼트는 무엇인가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